로그인 | 회원가입
 
 
 


home > 주일학교 > 주교공과
 
작성일 : 22-07-14 05:03
2022년 여름성경학교 참고 설교록(89년 8월 16일 수야)
 글쓴이 : 사활인
조회 : 37  
1989. 8. 16. 수야
본문: 요한복음 1장 10절∼13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번 공과로 주일학생들 가르칠 것입니다. 제 7공과가 되겠습니다.
 본문은 요한복음 1장 10절로 13절
 제목은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권세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여기 본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무슨 혈통으로 뭐 핏줄기로 난 것 아니고 또 사람들의 육의 무슨 정욕적으로, 육의 정적으로 난 것이 아니고 또 사람의 뜻으로 난 것도 아니고 아버지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그러면 피조물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
 제목.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
 요절은 ‘영접하는 자’ 어떤 자가 영정하는 자인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는 게 요절입니다
 서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 공로로’ 사활이라 말은 죽을 사(死)자 다시 살 활(活)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가리켜서 사활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활의 대속 공로로’ 대속이라 말은 우리를 깨끗하게 속해서 살리기 위해서 우리 대신 했다 말을 가리켜서 여기에 대속이라 그렇게 했습니다.
 ‘대속 공로로’ 공로라는 것은 형벌을 대신 받아서 사죄해 주셨고 또 대신 행하셔서 칭의 주셨고 대신 화목 제물이 되셔 가지고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친하게 하시고 또 대신 하나님이 사람 몸을 영원히 입고 당신이 나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중생과 산 소망이 있게 됐습니다. 그것을 대속의 공로라 합니다. ‘대속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삼에 본론. 일대지. ‘창조자시며’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자시며 전지 전능자시며 대주재시며’ 모든 것에 주인이 되는 분이십니다. ‘대주재시며 만주의 주시요’ 주가 많지마는 그런 모든 주들을 다 홀로 통치하고 계시기 때문에 만주를 거느리고 있는 주라 말입니다.‘만주의 주시요. 만왕이 왕이시오’ 왕도 수없이 많지마는 그런 모든 왕들을 홀로 통솔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해서 ‘만왕의 왕이신’
 ‘주권자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것은 뭣이든지 홀로 그 뜻과 권세로 모든 것을 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주권자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주권자는 하나님 한 분뿐이지 다른 아무것도 주권하는 거는 없습니다.
 ‘주권자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 되셨고’ 예수님의 이 사활의 사대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됐습니다.
 ‘아버지 되셨고 우리는 그의 영원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위에는 자녀라고 말하다가 여기는 ‘아들이 되었습니다.’그렇게 말해서 혹 여자는 밴 것같이 그렇게 생각하기 쉽겠습니다. 본문에 자녀라고 말을 했으나 실은 아들입니다. 하늘나라에는 딸이 없습니다. 전부가 아들입니다. 여자가 없습니다. 전부 남자입니다. 천사와 같이 남자의 권리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로 모든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습니다.
 둘째. ‘영생하는 생명과’ ‘우리에게 첫째 아담에게서 받은 것은 그 생명이, 이 생명이 그저 며칠 있다 없어지는 사람, 많이 살아도 지금으로서는 한 뭐 백오십 세 이상 더 못 삽니다. 그런 생명이지마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영생하는 생명과’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하는 생명과,
 ‘병들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하고 고통도 없는 몸으로 부활하여 신령한 영육으로’ 신령한 영육이라 말은 시간과 공간과 모든 방해하는 것을 초월한 것을 가리켜서 신령한 것이라 말합니다. ‘신령한 영육으로 영생할 우리들입니다.’ 신령한 영육으로 영생할 우리들입니다.
 또 삼대지. ‘하나님의 온갖 충만을’ 하나님에게는 뭐 충만이 한 가지 두 가지 충만이 아니라 그 충만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백 가지도 천 가지도 많은 모든 면에 충만한 하나님의 온갖 충만을 우리가 기업으로 상속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요의 재산을 자녀에게 유산으로 넘겨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그 충만을 우리의 영원한 기업으로 받아 가지고 우리 자신이 충만해지고 또 천상천하 모든 피조물에게 이 충만으로 그들에게 충만하는 은혜를 베푸는 직위로 살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우리가 유업으로 기업으로 이래 받아 가지고 우리가 충만해지고 이 충만한 걸 또 영세와 물질계에 있는 모든 만물들에게 이것을 우리가 나누어 줍니다. 무궁세계서는 그들이 하나님에게 받지 안하고 우리에게 받습니다.
 ‘충만으로 그들에게 충만케 하는 은혜 베푸는’ 우리가 공으로 주는 게 은혜 아닙니까? ‘은혜 베푸는’ 만물들에게 우리가 은혜 베푸는, 만물들에게 공으로 주는 ‘직위로 살 우리들입니다’ 그러면 그런 직분의 위치에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시켜 주는 이러한 은혜 베푸는 직분의 위치에서 살 우리들입니다.
 ‘이 구원에 대한 모든 준비를 우리는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 전력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큰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 구원을 완전히 우리가 받기 위해서 참 소유도 몸도 생명도 다 기울여서 전심전력해서 이 구원을 받아야 할 우리들입니다.
 문답에 있어서는,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이 큰 구원을 우리가 받았으니까 이 큰 구원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에 대해서 ‘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충만하겠습니다.’ 우리 할 일은 이 은혜를 생각하고 우리 마음에 감사함이 충만해야 되고, 이 구원으로 인해서 기쁨이 충만해야 되고, 또 이 구원을 주신 주님 앞에 나는 온갖 충성하는 그 충성이 충만해야 합니다. ‘충성으로 충만하겠습니다.’ 우리는 감사하겠습니다. 기뻐하겠습니다. 충성으로 충만하겠습니다 하는 그것이 첫째 답입니다.
 둘째로 ‘받은 이 구원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이 구원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답에 ‘밤낮 쉬지 않고 감사와 기쁨으로 생활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도 내 전부를 다하여 전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이래서. 제가 오늘 이 공과를 만들 때에 내든지 학생들이든지 이거 만일 다음 주일이, 다음 주일이 마지막으로 지키는 주일이 된다고 하면, 주일학생들도 마지막으로 지키는 주일이 되고, 나도 마지막으로 지키는 주일이 되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다음 주일을 마지막으로 지키는 주일이 된다고 하면은 무슨 공과를 가르치겠느냐, 한 공과 외에는 가르칠 게 없고 가르칠 여유의 시간이 없는데 마지막 공과를 가르친다고 하면은 무슨 공과를 가르쳐야 되겠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다가 이 공과를 기록했습니다. 아주 뭐 잘 아는 공과입니다. 아나 알기가 어려운 공과입니다.

 서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 대속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가 안 됩니다. 베수님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과 관계에 대해서, 하나님을 소망하는 데 대해서 대신 완벽하게 완전을 만들어 놨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 우리가 뭐 하나님을 부르기도 하지 이 공로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 부르면 대번에 전멸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공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불러도 하나님 옳게 못 부릅니다. 이러기에 ‘하늘님, 한울님, 하느님.’ 이러지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나왔지만 그거 부르지를 못해서 그거 지금 이름을 자꾸 변개하고 있습니다.
본론에 대해서, 가만히 우리가,
 이. 공과를 작성할 때에 마지막 학생에게, 그 학생이 요번 다음 주일 지키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불러서 가신다고, 간다고 하면은 마지막으로 그 학생에게 내가 무슨 설교를 해 줄까 그것을 생각해 봤고 또 내가 이번 공과 작성하고 그 다음에 마지막 공과 작성으로 작성한다고 하면은 마지막으로 내가 무슨 공과를 내가 작성해야 될꼬? 또 그걸 한번 생각해 봐서 이 공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래 만들면서, 그러면 만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이 구원을 아무래도 말해 줘야 되겠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뭐 대해서 할 일이 많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많이 기록돼 있습니다. 조심해라, 절제해라, 부지런히 해라, 겸손해라, 친절해라, 화목해라, 거룩해라, 성경을 열심히 봐라 뭐 그런 교훈이 육십육 권에 꽉 박여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매일 요구하시는 게 뭐일까? 그걸 또 한 번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매일 요구하시는 거, 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거 성경에 기록한 것 많습니다. 우리가 그걸 읽을라면 하루 다 못 읽지 안해요? 이렇츰 많은데 하나님이 뭘 기뻐하실까? 뮐 요구 하실까? 하나님이 제일 요구하시는 것을 이번 공과에 가르쳐야 되겠다. 또 우리가 오늘 죽는다고 하면은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것이 뭐인가? 또 내가 죽는다면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전해 줄 것이 뮈인가? 최종 말하자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유언하는 거와 같이 이제 마지막에 죽을 때에 그저 한 마디 제일 요긴한 걸 일생 동안 기억하고 간직해 뒀다가서 자녀에게 죽으면서 다를 힘이 없어도 똑 한 마디 말할 힘밖에 없는 그 힘 가지고서 말하는 걸 가리켜서 부모의 유언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 학생이 오늘만 살고 그만 다시 뒤에 살날이 없는 그런 학생이라면 내가 뭘 마지막으로 그 학생에게 가르쳐 주고 부탁을 해야 될까? 또 내가 세상을 떠난다면 무엇을 한마디 말해 주고서 떠나야 될까? 이 최종, 최종 최대의 교훈을 가르쳐야 되겠다 해서 이 공과를 작성한 것입니다.
 그러고, 그러면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는 것을 뭐 백 가지도 천 가지도 만 가지도 넘은데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할 일 가운데 제일 그 할 일, 제일 해야 될 중요한 일이 뭐인가? 우리가 제일 중요한 일이 뭐인가? 하나님께 대해서 우리가 할 일 중에도 제일 중요한 일이 뭐인가? 중요한 일을 한번 또 생각해 봤습니다. 이래서 제일 중요한 일, 제일 알아야 둬 중요한 일, 또 우리가 해야 할 제일 중요한 일 이, 두 가지를 생각하고 이 공과를 작성했습니다.

 알아야 될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창조자시며 전지 전능자시며 대주재시며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신 주권자 하나님이’ ‘주권자 하나님이’ 이걸 아는 것이 하나님이 제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전지 전능자시며 대주재시며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며 주권자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알고 ‘이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아버지가 되셨고 우리는 그의 영원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되었고 우리는 그분의 아들이 됐는데 이 세상에는 뭐 아들 해도 아버지 아들 촌수가 그저 한 몇십 년 가지 백 년도 못 갑니다. 죽고 나면 누가 압니까? 이러니까 그 촌수가 잠깐 없어지지마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은 천년 만년 억만년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영원히 이 촌수는 있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말만 그런가? 우리는 지금보다 더 똑똑한 사람으로 살아나고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더 확고히 우리에게 아버지 노릇을 하십니다. ‘우리는 그의 영원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또 둘째. ‘영생하는 생명과’ ‘영생하는 생명과’ 이 세상에 생명 암만 있어봤자 그것은 찍해야 뭐 몇십 년 있으면 없어지지 않습니까?. 몇십 년 되면 없어지고 그 생명이 없어질 때는 모두 사람들이 다 고통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영생하는 생명, ‘나에게는 죽지 안하고 영생하는 생명을 주셨다’ 이 영생하는 생명을 자꾸 생각하고, 또 ‘병들지도 아니하고’ ‘병 들지도 아니하고’ 병드는 것도 병이 들고 나면은 병 안 든 것을 가치를 압니다. 죽음이 닥쳐 놓으면 그때 이 참 사는 것이 생명이 귀하다 이러지마는 있을 때는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병들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하고 고통도 없는 몸으로 부활하여 신령한 영육으로 영생할 우리들입니다.’
 셋째 대지. ‘하나님의 온갖 충만을 우리가 상속받아서 기업으로 받아가지고 충만하여지고 이 충만한 것을 천상천하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 충만으로 그들에게 충만케 해 주는 은혜 베푸는, 공짜배기로 그들에게 충만케 해 주는 그런 직분과 직위를 가지고 살 우리들입니다. 이 구원에 대한 모든 준비는 우리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해서 전심 전력하여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 할 일인데, 문답에 대해서.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이렇게 큰 구원을 우리가 받았으니까 이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인제 이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충만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이 은혜를 인해서 감사하고, 우리가 뭐 몸을 드리고 돈을 드린다 해도 그까짓 거 가치 없는 것이오. 하나님께서 그런 거는 뭐 엿새 동안에 만든 것인데 무슨 가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이게 참 가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
 ‘감사하고’ 또, 이 구원을 인해서 기뻐하는 것,기뻐하는 걸 또 하나님이 그렇츰 좋아하십니다. 왜? 이 구원을 알면 기뻐하지 안할 자가 없습니다. 이 구원을 알면 기뻐하지 안할 자가 없지마는 이 구원을 몰라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 기뻐하는 것, 이 구원을 인해서 기뻐하는 건 주님이 참 좋아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바치는 것보다’ 더 좋아하요.
 우리가 자기 일생 동안에 벌어서 재물을 다 바치는 것, 이 주일학교 반사들도 어떤 반사들은 그저 토요일날 또 심방할라 하지 주일날 뺄 라 하지 이러니까 직장도 옳은 직장 못 갑니다. 옳은 직장을 갈라 하면은, 그 사람들 자 좋은 직장에 사람이 욕심나니까 넣어 줄라고 하기는 해도 그랄라면 토요일날도 다섯 시까지 일해야 되고 또 주일날도 와서 일해야 된다 하는 이것이 제일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거 안 걸리기 위해서 공부 해 가지고도 시험도 못 치지 또 좋은 직장도 가지 못하지 또 아주 일은 되고 품삯은 적고 한 그런 직장은 아무도 갈 사람이 없어. 취직할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그런 나머지기가 우리 직장이 된다 그 말이오.
 우리 직장이 되니까 이거 참 이 신앙생활 하기는 원망할라면 ‘내가 돈벌이 할 건데 주님 때문에, 내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돈벌이 못한다. 오늘 주일날 일했으면 내가 공장에서 회사에서 쫓겨나지 안할 건데 주일 지키다 쫓겨났다, 심방하다가 또 쫓겨났다.’ 뭐 원망할라면 얼마나 원망하고 또 ‘내가 월급도 안 올라가고 이렇다. 내가 공부할 새 다른 학생들보다 공부는 잘했는데 주일날 자격시험 칠 때에 쳤더라면 내가 훌룽한 취직 해 지금 어디까지 올라갈 터인데 예수님 때문에 이리 됐다.’ 원망할라 하면 한없이 원망하고,
 또, ‘이렇게 돼도 나로 하여금 주일을 잘 지키고 주님을 잘 믿도록 해 주셨으니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주일 지키고 주님을 믿지 못하고 모두 돈 때문에 직장 때문에 가족 때문에 이렇게 하는데 나는 이런 것을 돌보지 안하고 어쩌든지. 주일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주님이 나에게 믿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 감사하는 사람, 자기 받은 구원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고 하, 이 큰 구원을 인해서 기뻐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또 내가 이렇게 큰 구원 얻었으니까 나도 지금 주님에게 한번 충성을 다 해야 되겠다, 이 충성을 다할 그건 마음을 결심 가진 것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감사하는 것, 기뻐하는 것, 또 충성하는 것 이거 주님이 다 기뻐하시는데 그 세 가지 가운데에 어느 것을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겠습니까? 한번 대답해 봅시다. 이렇게 큰 구원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하는 이 감사하는 것과, 또 이렇게 큰 구원을 주셔서 구원을 받았으니 참 기쁘다, 기뻐하는 것, 내가 이 큰 구원을 받았으니 나도 이제 충성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겠다. 충성의 결심을 가지는 것이 세 가지 가운데에 어떤 것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실지 한번 인제 남녀 우리 여기 예배 볼 때 시합을 한번 해 봅시다, 이제.
 자, 손듭니다. 남반부터 먼저 들까요? 첫째 둘째 셋째지요? 처음에는 감사하는 것, 둘째는 기뻐하는 것, 셋째는 충성으로 각오하는 것이 셋째인데 자, 한번 물어봅니다. 남반에 첫째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아따 남반에 많이 들었다. 또 이제 또 그러면 여반 한번 또, 자, 첫째 이 감사하는 걸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신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손을 듭시다, 여반에. 여반에는 다 안 드네.
 자, 놓고 또 이제 두번째. 이 대속의,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구원을 주셔서 이 구원을 가져보니까 참 기뻐서 못 견뎌서 기뻐합니다. 기뻐하는 것이 제일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또 손 한번 듭시다, 남반에. 그게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또 여반에 하나님이 주신 이 구원을 인해서 기뻐하는 그것이 제일 하나님이 좋아하시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여반에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한번 들어봐요. 뻐뜩 들고 있어요. 더러 있고. 그라면 또 셋째로. 이렇게 구원을 주셨으니 나도 주님을 위해서 충성하겠다고 그렇게 결심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다고 생각하면 남반에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또 여반에도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거 뭐인지 참 판단하기가 어렵겠는데.
 나는 둘째입니다. 둘째. 기뻐하는 것을 나는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 구원 주셨으니 감사하고 이 구원을 받아 보니까 이 받아 보니까 어떻게 좋든지 기뻐서 뭐, 기뻐서 못견뎌 합니다. 그걸 주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감사하기 쉽지마는 이 구원을 인하여서 기뻐하는 것은 사람들이 잘 못 합니다.
 오늘 밤에 우리가 공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는데 이 하나님 아버지는 전지 전능자요 또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대주재시요 주권자시오, 전지 전능자신데 이렇게 지극히 크신 분이 우리 아버지 됐으니까 얼마나 또 좋겠소? 자기 아버지가 큰 회사 사장만 돼도 좋아하는데 이 큰 부이 우리 아버지 됐으니까 얼마나 좋겠소? 또 이에게 아버지 아들 되도록 예수님이 사활의 대속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녜 감사도 한없이 감사해야 되겠고, 기뻐하는 것도 한없이 기뻐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이제는 주님의 말씀대로 한번 충성을 다해서 살아, 보겠다 하는 그런 결심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공과는 마지막에 문답에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답에 ‘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충만하겠습니다.’ 이렇게 감사와 기쁨과 나는 충성하겠다 하는 충성으로 이 세 가지로 충만한 우리가 되는 것이 그것이 이 구원 받은 우리들에게 합당한 행위입니다. ‘받은 이 구원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하여야 합니까? ‘밤낮 쉬지 않고 감사와 기쁨으로 생활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내 전부를 다해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이 구원을 가져야 되겠다 하는 이런 생활을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작정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자, 오늘밤에 손들었는데 우리가 밤낮 이 구원 주신 데 대해서 감사하는 것과 밤낮 이 구원을 인해서 기뻐 좋아 못 견디는 것과 밤낮 이 구원을 인해서 나도 한번 충성을 다해야 되겠다고 그렇게 간절한 결심 있는 것과 이 세 가지 가운데에 어느 것이 제일, 어느 것을 제일 주님이 기뻐하실는지, 한번 생각해 봐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써 보니까 그래요. 감사하는 것보다도 그것 가지고 그걸 인해서 그 가치를 알아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그게 제일 좋아요.
 그러니까 오늘밤 설교가 이 뭐 공과는 쉬운 공과인데 아주 어려운 공과입니다. 이거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어짜든지 여러분들이 이 공과를 가르쳐 가지고서 그 학생들이 밤이나 낮이나 저 혼자 있으면서도 ‘아이구 기쁘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다. 나는 영생을 가졌다. 나는 이다음에 썩지 안하고 더럽지 안하고 쇠하지 안하고 병들지 안하고 늙지 안하고 쇠하지 안하는 이런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서 영생한다.’ 이걸 생각하고 기뻐 좋아할 수 있는 이런 학생만 만들었으면 성공입니다. 알겠습니까?
 이제 오늘 공과를 오늘은 끝마치고 돌아가서 오늘밤부터 말이지요, 자꾸 생각해서 ‘주여, 나 위해서 대신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이 구원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를 해서 내 마음에 감사가 우러나야 이 구원에 대해서 맛을 좀 보고 주님에게 대한 대접이 되는 것입니다. 또 이 감사도 있지마는 이 구원을 인해서 기뻐 못 견디는 이 기쁨이 있다면 참 하나님이 만족하십니다.
 이래서, 우리가 자꾸 주님의 자녀 된 것과 부활 영생하는 것과 하나님의 이 기업 받은 것이 모든 구원을 인해서, 구원을 인해서 우리 속에서 진정 감사 나오는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그거 없이 뭐 아무리 설교도 하고 아무리 이렇게 일을 잘하고 이란다 해도 주님이 이렇게 큰 당신의 전부를 다 내 구원 위해서 기울여 주셨는데 여기에 대해서 감사함이 없이 아무리 해도 ‘나는 이만치 충성했으니까. 내 일생 벌어가지고 다 바쳤으니까 내가 언간히 했다’ 하면은 주님 마음에 섭섭합니다. 잘했지마는 섭섭하요.
 ‘어째 주님이 나 위해서.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어 희생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이 감사함이 우리 속에 우러나는 그것이 주님 대접 중에 큰 대접이오. 이 대접도 크고, 주님이 주신 이 구원을 인해서 좋아서 못 견디고 굴리고 뜁니다. 이거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교회서도 이거 좀 못난 사람, 무식한 사람, 또 이거 병신 이런 사람들 보니까 이 구원을 인해서 속으로 좋아 못 견디고 속에 기쁨을 금할 수 없이 속에 건드리기만 하면 기쁨이 툭 튀어나와 버려. 이렇게 이 기뻐하는 우리가 되도록, 여기서 이제 나도 주를 위해 충성해야 되겠다는 충성이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생겨지는 거,
 이 세 가지가 생겨져서, 누가 예수 미치괭이 김의근이라고 했는데 예수 미치괭이가 됐으면 좋겠어. 이래 가지고서 자꾸 생각하면 미칩니다. 우리가. 자꾸 생각하면 미쳐요. 자꾸 생각하면 미친다 말은 자꾸 생각하면 완전히 변화돼 버려. 이 깨갱이 흉측한 것 못된 것 독한 것이거 모든 고집쟁이,
 이래서 젊은 아이들의 얼굴은, 청년 얼굴보다 아이 얼굴은 더 예쁘고, 노인 얼굴보다는 청년 얼굴이 예쁘고, 또 노인도 곧 죽음라고 골케골케, 냄새 나는 우리같이 한 팔십되는 노인보다는 또 젊은 노인이 보기 좋다 그 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이런데, 그거 안 그렇습니까? 그것은 속에 악이 들어 있고 어린아이들은 그건 게 없거든. 그러니까 어린아이 보고는 다 좋아합니다.
 이런데 우리가 주님의 이 사활의 대속으로 얻은 구원을 인해서 우리 마음에 감사가 충만해지면 자연히 얼굴이 달라질 것이고, 이 구원을 인해서 기쁨이 충만해지면 우리 용모가 달라질 것이고, 또 이 구원 받았으니 나도 죽도록 한번 충성해 보겠다 하는 결심이 이제 생겨지면 또 우리 얼굴이 달라질 것입니다.
 기쁨이 충만하고 속에 막 긴장해 두 주먹을 거머쥐고 아주 용감스럽게 이렇게 딱 달라들면 뭐 아무나 보면 툭툭 튀어나갈 만치 용기를 가지고, 아주 용기를 가지고서 담대를 가지고 있는 충성에 나오는 용모가 우리 얼굴빛을 강하게 해서 누가 보면 ‘아이구야, 그거 건드렸다가는 큰일나겠다’ 이렇게 껍데기에 아주 강기가 가득하고 또 그 속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고 이래서 좀 예수 미치꽹이가 될 만치 그래 한번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그때만치 못 그래요, 하기는. 가다가도 기쁘고 앉아도 기쁘고 서도 기쁘고 기뻐서 못 견뎠는데 ○○○권사님은 신앙생활이 변동이 없는 것 같애요. 없는 것 같은데 그때 기쁨이 지금 그렇게 있습니까? 그때 기쁨이 있습니까. 그렇츰? 그렇츰 있습니까? 어째 기쁨이 줄어졌습니까 그때와 같습니까? 그만치 기쁨이 있어? 그만큼 안 기뻐?
우리 다 이거 감사의 병이 들었고, 기쁨의 병이 들었고, 충성의 병이 들었고 이러니까 오늘 저녁에 이거 세 가지 다 고칩시다.
 고쳐 가지고서 자꾸 생각하면 그 속에서 막 감사가 터져 나와서 ‘주여, 나도 주를 위해 죽겠습니다!’ 이 감사의 힘으로써 죽을 수 있고 기쁨의 힘으로써 우리는 뭐 뭐이든지 다 할 수 있겠고 충성의 힘으로 다 하겠습니다. 이래서 감사병 든 것 또 기쁨병 든 것 충성병 든 것이 세 가지 다 고치기로 작정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예, 한번 고쳐 봅시다. 그래 가지고 예수 미치괭이 한번 돼 봐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저녁에 병 세 가지 병 고칠 것, 산에 가도 세 가지 병 고치고 들에 가도 세 가지 병 고치고 어짜든지 이 세 가지 병을 고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