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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0-26 12:21
우리의 피난처
 글쓴이 : 이병철
조회 : 2,204  
누가복음 15장 1-7절                                                  2014.10.5.주전예배

여기 1절 2절 말씀에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께로 가까이 나아오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것을 원망하면서 이 사람이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하고 죄인과 함께 음식을 같이 먹는다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이러하다 하는 것을 지상 교회가 이러하다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고 세리와 죄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위치에서는 자기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다른 사람의 흠 점을 찾아서 훼방하고 자기를 교만하게 하는 사람들이고 또 세리와 죄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들을 죄인으로 취급하고 있으니까 죄인이 되어 있은 줄 알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긍휼을 입고 은혜를 입으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으로 대속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기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평안과 기쁨을 받아 누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하나의 교회를 이루는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몸 된 이 하나의 ㄱ회를 이루어 갈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같이 교회의 교권을 가지고 자기들을 중심해서 이렇게 다른 사람을 훼방하는 위치에 있지 않고 세리와 죄인들 같이 자기 죄를 사함 받고 예수님 대속의 의를 힘입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평안과 기쁨을 얻으려고 우리가 힘을 써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이 목격을 하시고 저희들에게 비유로 가르쳐서 말씀하여 주시는 이 말씀이 3절~7절까지의 잃어버린 양 비유로 가르쳐 주고 그다음에는 열 드라크마 비유로 가르쳐 주시고 또 이어서 탕자 비유로 교훈하여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이 말씀은 잃어버린 양 비유에서 우리의 자신의 잘못되고 비뚤어진 이런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서 그리스도안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비유해서 가르쳐 주는 이 실상을 깨달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하시는 이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참 된 진리요 영원한 계약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 때에 한 말씀이라도 에누리하고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면 말씀대로의 실상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이 하시는 이 말씀은 믿고 순종만 하면 실상이 이뤄집니다. 죽은 나사로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도 돌을 옮겨 놓아라. 하시는 주의 말씀을 네가 믿거든 돌을 옮겨 놔라. 믿고 돌을 옮겨 놓을 때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은 나사로야 나오너라. 말씀한대로 주님의 말씀은 죽은 자도 살리고 없는 가운데도 있게 하고 천한 것도 존귀하게 핫서 우리를 구원 하시는 주님이요 주의 말씀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이 계약해서 말씀하여 주신 이 말씀은 모든 믿는 자에게 바라는 그 소망이 실상이 되도록 진리로 말씀하여 주시지, 우리 인간의 지식이 미치지 못해서 깨닫지 못하고 또 순종치를 못합니다.

이러한 우리 죄를 회개해서 어쨌든지 믿음으로 의에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첫째로 말씀하는 것은 양 일백 마리를 치는데 한 마리를 잃어 버리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도록 주인이 찾아다니지 않겠느냐. 잃어버리지 않은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우리가 첫째로 깨달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 잃어버리지 않은 아흔아홉마리의 양을 비유로 가르쳐 줍니다. 그 비유의 실상을 주님이 해석해 주기를 칠절에 뭐라고 비유했습니까.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들에 두고 아흔 아홉 마리는 들에 두고 하는 이 마씀은 하늘에서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오늘 믿는 우리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에 속하고 그에게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나 또 우리가 거하고 있는 교회나. 말ㄹ세를 당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형편은 다 어떤 형편에 있는가. 개인적으로도 어려움이 많고 가정적으로도 어려움이 없는 가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하나 되어서 교회와 싸우는 싸움이 있는 세상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유물주의 사상과 또 민주주의 사상이 대립되어 있는 사회요 또 많은 그런 테러를 상대로 전쟁하고 있는 세계의 상태입니다. 이런 세상속에 21세기 문화의 세계는 경쟁하고 또 경쟁해서 다 멸해지는 사람이 있고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과학이 발달해 감으로 정보에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 물질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빈부의 차이도 많고 또 지능의 차이도 많고 삶의 형편의 차이도 많이 있으니 이 가정은 저 가정을 저 가정은 이 가정을 보고 세상 경쟁하는 데에 힘을 쓰고 나라와 나라는 우리 아시안 게임이 끝났지만 아시아 45개국이 한 마음 한 뜻을 이루자 하고 세상은 이렇게 하나 되는 것으로 계속 언어도 운동도 경제도 사람도 다 인간 중심으로 하나의 세상을 이루자고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자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대립이 없을 수 없ㅅ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을 따라 내가 믿음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려고 하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주일을 지키는 성도에게는 바ㄴ드시 이런 갈등과 대립 속에서 이기고 주일을 지키지 지면 세상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국제간의 어려움도 있고 또 사업의 어려움도 육체의 어려움도 경제의 어려움도 가정의 어려움도 개인의 어려움도 우리 앞에는 산 넘어 산입니다. 이거 하나 해결 하면 또 문제생기고 또 문제 생겨서 참 세상 살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다. 이래서 겉으로 보면 세상 사람 살아가는 그 모양들을 보면 이 사람은 참 성공하는 것 같다. 이래 보이는데 결국은 실패하고 아 이 사람은 이래이래 살면 실패 할 것 같다 하는데 ㅇ나중에 보니까 성공합니다.

이래서 성공같은 실패 실패 같은 성공이 섞여 사는 세상입니다. 이 사람은 참 편안하게 살겠다 하고 들여다보면 항상 고민 고통 환난 속에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은 어렵고 힘들어서 어떻게 이런 가정에서 신앙 생활 하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참 평안하고 기쁘고. 남들이 보면 죽을 지경이고 힘들고 어려운 형편인데 그런 속에서 평안하고 기쁘고 담대하게 신앙 생활 하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 우리가 살고 있으면서 다윗은 왕이 될 때 나의 원수는 천천이요 만만이라. 이랬습니다. 그 원수는 불신자가 보는 그런 원수가 아닙니다. 그 원수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주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할 때 살지 못하게 하는 원수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다윗 같이 그런 밝은 심령을 가지고 오늘 믿음으로 살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겠습니까? 사업을 해도 살림을 해도 내가 어떤 직장을 다닌다고 다녀도 이렇게 개인적으로 어려움이 산적해 있고 가정의 어려움도 해결 못할 난제들이 해결 하면 또 생기고 해결 하면 또 생깁니다. 이런 경제적 문제 국가적 문제 사회적 문제 사업적 문제. 신앙적 문제. 이런 많은 어려움들이 있는 세상 속에 우리 신앙 생활은 참 어렵고 힘든. 다윗 같이 원수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할 만큼 우리 앞에는 이런 어려움이 많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환난 속에 사는데 핍박 속에 사는데 참 평안하고 기쁘고 담대하게 사는 길이 없을까요.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는 세상 환난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런 모든 핍박이나 환난이나 곤고 속에서 피해서 생명과 평안과 기쁨으로 살수 있을까. 우리의 피난처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신 신구약 성경. 말씀 대로 믿고 순종해서 모든 어려움을 피해서 평안하게 살 수 있고 해결 할 수 없는 난제를 해결 하고 자유롭게 살수 있는 이런 피난의 길을 주님이 열어 놓으시고 우리를 말씀으로 가르치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찾아야 할 것입니다.

시편 91편 구약 869쪽. 1절.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라.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내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우리의 피난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경제의 어려움 속에 죽을 지경인데 피난 길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건강의 어려움 속에 날마다 고통 속에 살면서 기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자녀의 어려움 사업의 어려움 국가의 어려움 세계의 어려움 이런 많은 난제들이 있을 때에 이런 난제를 해결 하고 평안하고 자유롭고 기쁜 곳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어디로 가야 한다고 말씀합니까.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다윗은 이것을 깨닫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피난 하여 가서 평안하고 자유롭고 기쁜 곳은 우리 구주 하나님이시라. 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 이 분에게로 가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누가 복음 15장 3절에 4절에 비유하기를 아흔아홉마리 양을 들에 두고 아흔아홉마리 양을 들에 두었다고 하니 백 마리 양을 치다가 한 마리 양을 잃어버리니 한 마리 잃어버린 양 차지 위해서 아흔 ㅎ아홉 마리는 이리 떼가 와서 물어가거나 말거나. 맹수 위험 속에 버려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찾으러 갔단 말입니까. 주인이 그리 하겠어요. 성경을 읽고 깨달을때 육체대로 인간 욕심대로 주관대로 성경읽고 해석 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리석은 주인이라도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찾으려고 아흔 아홉 마리 맹수가 와서 물고 갈줄도 모르고 버리고 가는 주인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었다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야겠어요? 예수 믿는 다고 아무리 하나님말씀대로 믿고 주일 거룩하게 지키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도 하나님은 내버려두고 내 고난 고통을 남몰라라 하고 하나님이 버려 두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비유하여 말씀할 때 그 실상을 칠절에서는,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비유해서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들에 두고 라고 비유를 한 겁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죄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은 평안할까요 고통스러울까요. 평안합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을까요 슬픔이 있을까요? 기쁨이 있습니다. 거기 속박 되어 살까요 자유로울까요. 자유롭습니다. 우리 주님이 피 흘려 구속 하시고 우리에게 대형으로 사죄은혜를 입혀서 죄 마귀 사망에서 해방 시켜서 자유롭게 하십니다. 이 들에 두었다.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 안에 있다고도 말씀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주님이 피흘려 구속 한 의인들을 절대 보호한다는 말씀이죠.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혀 준다는 말씀입니다. 들에 두었다는 말은 아흔 아홉 마리 양이 푸른 초장에 얼마든지 풀을 뜯고 자유롭게 사는 그 푸른 초장에 두었다. 쉴 만한 물가에 두었다. 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 보호와 사랑과 은혜속에 두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사랑과 은혜와 능력의 보호를 입고 사는 거기에는 평안하고 기쁘고 자유롭습니다 .우리를 세상에 두어서 양을 우리를 구속 해서 세상에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 믿는 우리를 주님이 구속 해서 세상에 보내서 한평생 살게 하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 것과 같다니까 날마다 고통 속에 이리가 심키면 어떻게 될까 걱정 하고 염려하고 살게 했다 그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절대 사랑과 은혜와 보호를 입어 사는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도록. 그런 가운데서 우리 믿음이 장성하여 가도록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아흔아홉마리 양은 의인 아흔아홉명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의인 아흔아홉을 비유해서 들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 양으로 비유해 주었다. 이걸 첫째로 우리가 깨달아 가져야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전지 전능 하신 주님이 홀로 주권을 가지고 개별 개별을 섭리 하십니다. 들에 있는 아흔아홉마리 한 마리 한 마리 마다 먹어야 할 풀 마셔야 할 물 맹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절대 사랑과 은혜와 보호 아래 두시는 것을 믿습니까.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주님이 비유하여 주시는 양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방치 했다는 말이 아니고 가장 좋은 곳에 가장 보호가 든든해서 해가 없는 곳에 이렇게 주님이 지켜 보호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머리털 하나 희고 검은 것도 주님이 주권 하고 역사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면서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실지라도 주님이 말씀하여 주시는 영감과 진리를 따라 믿고 순종하는 의인이 되어 살 때에.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켜 보호하시고 은혜 베푸셔서 평안하게 하시고 자유롭게 하심이 얼마나 세밀하다는 것을 똑똑히 믿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에누리 하면 안돼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우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우리 생명에 대해서 생사에 대해서 행불행에 대해서 존귀 비천에 대해서 당신이 다 책임을 지시고 사랑하시고 구원 하십니다. 이 분 우리 주 하나님의 보호를 입는 이것이 우리 피난처입니다. 우리의 요새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보호를 입어서 사는 가정이 되고 사업이 되고 공부가 되고 내 일이 될 때에 거기는 한 없이 기쁘고 평안하고 자유롭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보호를 입어 살고 사랑을 입어 사는 거기가 우리 피난처 안식처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했지 않습니까. 이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그 믿음 생활은 거기가 우리 피난처라 이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돈을 모아 놔도 그 돈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 세우지를 못합니다.

우리 지위와 명예가 어떤 지위와 명예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합니다. 노아 홍수 때에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것을 초월한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한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해서 만들어 놓은 방주 안에서만 구원이 있었지 평안했지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는 이 걸음을 걸었지 방주 밖에는 평안도 없고 기쁨도 없고 멸망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적 환난이나 우리의 육체적 환난이나 아는 환난이나 모르는 환난이나 어떤 환난이라도 오늘 예수님 믿는 우리의 피난처. 우리의 안식처는 하나 뿐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길 밖에 없다.

그리스도 안에. 주님 안에.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고 찾아가는 이 한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피난처를 다 가졌습니다. 안식처를 우리는 다 가졌습니다. 의인들의 피난처는 최종 역사 세계가 끝날 때에 의인들의 피난처는 어디라고 말씀했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의인에 대해서 바른 구원의 도리를 가져야 합니다. 의인은 선한 목자장 보호 아래 있습니다. 의인으로 살아야 선한 목자장 그늘 아래 거하게 됩니다. 의인은 누가 의인이냐.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 대속을 입은 자가 의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지켜 의인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 하나님 말씀을 다 지켜서 우리에게 칭의의 은혜를 입혀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 사활의 대속을 주님이 입혀 주신 것을 제가 벗어 버리지 않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이 입혀 주신 구속의 은총을 자기가 귀찮다고 벗어버리고 편리하지 못하다고 벗어버리고 내가 이 일하는데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벗어 버리면 저는 죄인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피난하는 피난처에 들어가는 길은 이 주님이 입혀 주신 구속을 벗지 아니하고 입고 사는 이것이 피난처 들어가서 평안하게 거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한 병이오고 고통 스러운 그 아픔이 있을지라도 이 피난처 안에 들어가면 평안하고 기쁩니다. 이것을 경험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주님이 사활로 대속하여 주신 이 구속의 은총을 벗지 아니하고 입고 사는 것은 온 세상은 구속 하신 주님 바라보지 말고 주님이 지어 놓은 피조물 그거 더 바라보고 의지하라고. 유혹하는 이런 세상 속에 미혹 하는 세상 속에 지식을 가지고 돈을 가지고 명예를 가지고 평안을 가지고 미혹하고.

권세를 가지고 위협하는 이런 세상 속에서 누구만 바라봐야 해요? 주님만바라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살도록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시고 도 믿음을 주셔서 불로 연단한 금보다 보배로운 믿음 생활 하게 하셨다. 우리는 부활에 연합한 새 사람 생활은 첫째로 주를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이것이 첫째입니다. 소망과 믿음을 어디 두느냐. 소망과 믿음을 세상에 두느냐. 주님에게 두느냐. 나의 살고 평안하고 복 된 길은 주 외에 없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 마다 자기를 뭐한다구요?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1서 3장에 말씀합니다. 주일날 우리가 주일을 지키며 주님 부활에연합한 새 사람 생활 함에 있어 이것을 첫째로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피난처가서 피난 합니다. 인식처에서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이제 사죄를 믿고회갷면서 죄없는 자로 살아야 해요. 주를 향한 믿음과 솜아을 가지고 세상은 또 죄를 지으라고 하나님 말씀 어겨서 살아라고 이렇게 역사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주일을 범해 가면서 세상 살라고. 사람과 원수 삼으면서 살라고 자기 유익을 위해 모든 희생을 해서라도 살라고. 하나님 말씀 어겨 살라고 하는 세상 속에서 주님이 나에게 사죄 주셔서 죄없는자 삼아 주셨으니 하나님 말씀을 어겨 살 수 없다.

이제 가지는 죄를 범하고 산 죄는 주님 다 사죄해 주셨으니 주여 내가 이제는 회개합니다.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죄 없는 자로 무죄자로 사는 것이 피난처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주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한 걸음 걸어 들어가는 거에요. 멸망 속으로 빠져들어가지 아니하고 구원 하시는 쥠을 향해서 들어가는 길이요. 온 세상은 악령 마귀는 역사해서 자기주관 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의 그 법대로 살아났고 자기 중심으로 살아났고 역사하는게 세상입니다.

이런데 주님은 우리를 대행 해서 칭의를 입혀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게 해 주셨기 때문에 의롭게 하신 주님을 위하여 주님 시키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나는 주님 시키는 대로 합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니요 주님의 것이요 나는 주님의 종이요 주님의 것이 되었고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종이 되었으니 주님 시키는 대로 순종합니다. 나의 주인은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하고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이 믿음으로 주님 사랑 안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귀 자식이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 아들인데 세상은 세상 임금이 장하고 세상으로 하나되어 살자고.

마귀의 자식으로 살자고 미혹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데 아니야.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 되었어. 부자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라. 홀로 주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라. 심판주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라. 이 모든 것을 주권 하고 주재 하시는 만왕의 왕의 아들이라.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살지 다시는 마귀의 종 되어 살지 않겠다고 이렇게 해서 주님과 동거 동행하는 것이 어디로 들어가는 길이에요? 피난처로 들어가는 길이에요. 안식처로 들어가는 길이에요. 참 평안하고 기쁘고 자유로운 생명 세계에 들어가서 자유할 수 있는 이 길을 우리 주님이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의인으로 사는 길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생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에게 이 구원을 입어서 사는 것을 네가지로 말씀했습니다. 첫째는 세상에 살 때 뭘 가져야 해요? 우리 소망과 믿음이 주님 에게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지은 죄를 회개하고 말씀대로 살아야해요. 셋째는 주님 시키는 대로 순종하고 살아야 해요. 넷째는 주님 모시고 동행하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인의 삶입니다. 이렇게 사는 의인은 하늘에서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에 속한 것이요 이는 푸른 초장에 쉴만한 물가에 목자가 인도해서 하나님의 절대 능력의 보호를 입어 사는 것이기 때문에 죄의 역사 마귀의 역사고 사망의 역사도 여기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능력의 보호를 입어서 가는 걸음이기 때문에 이 인도를 받아 가는 이스라엘의 걸음은 애굽 해서 출애굽 해서 가는 걸음이 하나님 절대 능력의 보호를 입어 가는 걸음입니다. 따라가는 걸음이 홍해 앞에 있어도 믿음 있는 사람은 하나님 솜씨를 보자 하지만 믿음이 없으면 두려워떱니다. 죽을 지경이죠. 그러나 믿고 순종해 봐야 경험 체험 하게 되는데 경험 체험 해도 다 잊어 버리고 또 새로운 현실 만나면 원망 불평 하는 사람 되지 않도록 우리가 힘써야 할 것입니다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다른 방편은 전부 속이는 것 죽이는 것 망하게하는 것이요 피난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인으로 사는 이 길 밖에 없다 하는 것을 주님이 오셔서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피난하여 가는 길은 예수 믿는 길이라. 예수 믿는 길은 진리를 따라서 주님과 연결 된 생명으로 사는 이 길 외에 우리의 피난처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 외에는 없다. 우리 피난처는 하나 뿐입니다. 우리가 의인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사활 대속을 벗지 아니하고 입혀 준 대속을 입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지 전능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피난처를 두고도 깨닫지 못하니까 이 걸음을 못 걷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주일날 받은 말씀 가지고 자꾸 새기세요. 작은 산으로 들어가리라. 마지막 때 급할 때 환난때에는 작은산. 이 기도로 피난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안돼요. 지금은 기도원 마다 사람들이 기도하러 안갑니다 교회에서 기도하지 말은 그렇게 해 놓고 교회 와서 기도 안합니다 .

새벽기도 안옵니다. 가정에서 예배드리지. 가정에서도 형식으로 하다가 말다가. 하나님과 얼마나 멀어지는 지 몰라요. 깨어야 해요. 작은 산은 기도의 산입니다. 주의 말씀을 가지고 주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사는 길을 걸어가야 의인의 걸음을 걷습니다. 우리 피난처 속에 들어가서 남들이 보면 죽을 지경인데 살고 고통 받는 것처럼 보이는데 평안하고 자유롭고 구속 당해 살 것 뭐있나. 들어가보니 참 자유롭습니다. 이세계는 비밀의 세계여. 몰약 산이라고 하는 것은 간구의 산입니다. 죄짓지 않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지은 죄는 회개하고 믿음을 순종하고 주님 따라가는 걸음을 열어 보이실 때 영감과 순종을 따라 순종해 나갈 때 의인의 걸음을 걷게됩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없는 의인아흔아홉을 비유해 아흔아홉마리 양을 들에 두고.

세상에 뒀는데 거기 먹을 것도 있고 마실 것 입을 것 있고 원수 없고 하나님 지켜 주시고 사랑해 주심을 믿습니까. 이런 속에 살도록 주님이 구속합니다. 그런데 백 마리 양 중에 한 마링 양은 목자를 떠나서 멀어지고 멀어져서 우리 밖을 떠나서 가는 걸음이 죄인이 가는 걸음이요 목자를 떠나도 목자와 멀어지고 상관없이 제 맘대로 주관대로 사는 그것이 살 길인줄 알고 그러면 자유로운 줄 알고 거기 가면 먹을 것 입을 것 많고 좋은 분별이 있는 줄 알지만 가는길이 맹수가 있고 개울이 있고 어려움이 많은 줄 모릅니다 목자 인도 못받으면 소경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안으로 피난해야 합니다. 하나님 향하여 소망 믿음을 가지고 지은 죄 회개하고 죄 없이 살고 주의 뜻대로 순종하고 살고 주님 모시고 동행하는 걸음은 주님 사랑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여호와 하나님이 피난처인줄 알고 하나님 안에 사는 이 사람이 아흔아홉마리 양을 들에 두었다. 참 평화롭고 자유롭고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서 평안하고 자유롭게 사는 이 세계에 살도록 주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의인은 하나님 안으로 피난해야 합니다. 가정에 있어도 하나님 안에 들어가서 사는 가저잉 되어야 해요. 사업을 해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사업, 공부를 해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공부, 일해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일 해야 합니다 .한 마디 말 도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되어야지 하나님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거은 다 탈선하는 것이요 멸망하는 것이요 죽고 멸하는 걸으을 걷는 다는 것을 여기서 말씀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