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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4-27 12:44
부활의 권능
 글쓴이 : 이병철
조회 : 2,379  
부활의 권능  2014.4.20  주후예배
고린도전서 15:36~42

36절에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하는 말씀에 대해서 간단히 증거하려고 합니다. 우리 기독자의 구원은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으로 구별이됩니다. 기본 구원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받은 지극히 큰 구원이고 건설 구원은 이미 받은 기본 구원을 우리가 믿는 믿음으로 살 때에 각각 자기의 믿음으로 건설 되는 개인 구원입니다. 이 기본 구원은 우리 사람들이 노력하지 아니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지는 구원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는 영의 구원입니다. 건설 구원은 죽은 영이 살아나서 중생된 사람으로 살아난 이 영으로 우리 심신인 육이 산 행위를 할 때에 우리 심신의 기능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이 건설 구원을 성경은 비유해서 가르치기를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은 다 불타게 되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집은 하나도 불타지 않는다고 고린도전서 3장에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생 동안 이렇게 건설 하는 것이 자기 자체구원. 행위 구원. 자기 소유 구원을 건설 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 자기 자체와 행위와 소유를 건설 해 나가는 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 생활입니다. 일평생 자기 자체를 얼마나 영광스럽게 건설 하느냐. 자기 행위를 얼마나 실력 있게 건설하느냐. 자기 소유를 얼마나 통치하고 은혜 베풀수 있는 소유로 건설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자는 신앙 생활을 안해도 예수님 대속으로 하늘 나라 갑니다. 죽는 날 까지 죄만 지어도 대속으로 하늘 나라 갑니다. 이것이 기본 구원입니다 .영이 하늘 나라 가는 것은 택한 자면 다 가게 되고 택하지 아니한 사람이면 아무리 세상에서 애를 쓰고 훌륭한 도덕을 가졌다 할지라도 가지 못합니다.

여기 하늘나라 가고 못 가는 것은 하나님의 택함에 근거 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에서 믿음 생활 함으로 건설 하는 이 구원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 중생 되고 그 다음에 중생 된 새 사람 생활을 하느냐. 중생은 되어도 새 사람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옛 사람 생활 그대로 하느냐. 여기에서 구원과 멸망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노력 하는 것은 하늘 나라 가기 위해서 신앙 생활. 노력 하는 것 아니고, 하늘 나라는 다 가는데 신령 한 몸으로 부활 할 대 부활 한 자의 영광, 권능 존귀가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영광 문제. 영원한 권위 문제. 영원한 실력 문제. 영원한 자기의 소유 문제. 자기의 가치 문제. 이것을 지금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지만 부활 한 사람의 가치는 각각 무한합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서 가치가 없고 사람이라서 가치 있는 것 아닙니다.

다 같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실력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고 그 사람의 이력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지고. 그 사람이 마련한 지위와 권세. 또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영광에 따라서 자기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늘 나라 구원 얻어 가는데 구원 얻은 자의 영광과 가치와 실력이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들이 세상에서 예수님 믿는 노력을 하는 것이지 천국 가기 위해서 노력 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을 모르고 믿는 사람이 지옥 안 가고 천국 가려고 애를 쓰고 천국에서 자기가 어떤 행위 어떤 사람 어떤 권세 어떤 영광을 마련 하지 못한다면 많은 구원의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땅 속에 심는 씨앗이 생명이 있으면 그것이 썩어서 자라고 생명이 없으면 썩어서 그대로 흙이 되고 맙니다.

사람이 세상 살이를 하는데 속에 생명이 없는 사람은 하루 살면 그 만큼 죽었습니다. 일년 살면 일년 죽었습니다. 십년 살았으면 십년 죽었습니다. 저는 사는 줄 알지만 하루 살면 하루 죽었고 오십년 살았으면 오십년 죽었고 그러다가 마지막에 죽어서 영원한 사망을 받게 되는 것이 생명이 없는 사람입니다. 영생하는 생명없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예수님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삶입니다. 이 사람은 죽은 생명으로 세상을 죽어가는 삶을 사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어 영생하는 생명이 있는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영생하는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하루 살면 겉 사람은 쇠해 져도 속 사람은 영생으로 살고 살아갑니다. 성경에 말씀하기를 그 사람은 피폐 하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롭도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고린도후서 5장에 바울은 탄식하기를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생명에게 삼키운 바 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한다 말씀합니다. 죽은 고기를 산 생명이 있는 것이 먹으면 생명 있는 것이 돼죠. 밀을 심으면 밀에는 생명을 가진 눈이 있습니다. 쪼매난데 그것을 땅에 심으면 그 생명이 땅 속에 들어가면 생명 작용으로 그것이 차차 불어서 썩어 버립니다. 그것이 썩으면 달콤한 당분으로 변합니다. 그것을 누가 먹느냐. 그 속에 생명이 빨아 먹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움싹이 나옵니다. 병아리도 21일 따뜻하게 품어 놓으면 그 생명이 흰자도 노른자도 먹어서 병아리가 껍질을 까고 나오죠. 우리 구원도 똑같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들어 활동 하느냐. 활동 하는 것은 마음과 몸에 정력이 있습니다. 그 속에 중생된 영이 있습니다.

이 중생 된 영은 중생이 되었기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중생된 영이 있고 마음의 힘도 있고 몸의 힘도 있는데 이것이 자기 현실에 닥칠 때 심신의 정력이 그 현실에 활동하게 됩니다. 그 현실에서 심신의 정력이 변해집니다. 심신의 정력을 속의 생명이 먹으면 생명이 자라서 영생하게 됩니다. 생명이 그것을 먹지 않으면 썩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 현실에서 산 영이 삼키우면 심신의 기능은 영생하는 기능이 되고 죽은 생명이 그것을 삼키면 심신의 기능은 죽은 기능이 됩니다.

우리 현실에서 썩을 기능을 마련하느냐. 아니면 영생하는 기능을 마련 하느냐. 우리 육체의 소욕은 사망이요 영의 소욕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시간 살면서 그 시간에 어학을 공부하면 어학 능력이 많이 늘고 기계를 가지고 연구를 하면 기계를 다루는 기능이 마련 되고 과학에다가 한 시간 정력을 기울이면 그 정력이 과학을 연구하는 실력이 마련 됩니다. 문학을 연구하는데 기울이면 문학 실력. 어학에 기울이면 어학 실력이 마련 됩니다. 진리대로 심신이 살면 진리로 사는 기능이 마련 됩니다. 인사 관리를 사무실에서 진리로 하면 진리의 기능이 마련 되고 사람과 교제 하면서 진리로 교제 하면 진리의 기능이 마련 되고 양심으로 하는사람 영감으로 하는 사람 예수님의 대속 공로를 입고 사는 사람.

나는 사죄를 주님이 주셨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다. 죽기 까지 칭의를 내게 입혀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 의를 팔 수 없다. 나는 주님이 화친하여 아들로 삼아 주셨기 때문에 불목 할 수 없다.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는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이 소망을 버릴 수 없다. 이런 사람은 다 진리로 영생하고 영감으로 영생하고 예수님 대속으로 영생하는 이런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이 마련 됩니다.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 무엇이 살고 있느냐. 자기 심신의 힘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심신의 힘은 없어지고 없어진 것 만큼 영생하는 기능이 마련 되든지 아니면 영멸하는 기능이 마련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마련 됩니다. 우리가 천국 가기 위해서 노력 하는 것 아니고 택한 자들은 예수님 대속 공로로 다 천국 가는데 어떤 자로 천국 가느냐.

아주 수치 스러운 천한 자로 가느냐. 영광스럽고 존귀한 자로 가느냐. 하늘 나라 갈 때에 만물이 다 환영 하는 자로 가느냐. 만물에게 아주 배척과 천대를 받는 자로 가느냐.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하늘나라에 입고 가는 옷을 뭐라고 성경에 말씀했습니까. 세마포 옷을 입고 하늘 나라에서 사는데 그 세마포 옷을 성경에서 말씀하기를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 그리 말씀합니다. 하늘 나라는 행실을 입고 사는 나라입니다. 자기가 일평생 어떤 행위를 했느냐. 세상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좋은 양복을 입고 있어도 좋은 양복을 입고 있는 저 사람. 도둑놈이야. 도적질 해서 저렇게 좋은 옷 입고 살아. 이렇게 욕을 얻어 먹을 수도 있고. 성자가 남루한 옷을 입고 있어도 저 사람은 성자야.

어디서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이야 그 겉 모양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위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 나라는 자기 행위를 입고 사는 나라가 하늘 나라입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서 70을 살든 60을 살든 1년을 살든. 얼마를 살든지 자기가 심신의 정력을 가지고 현실 현실을 살아 가는데 그 현실에서 행위 실력을 마련 하게 됩니다. 현실에서 자기가 살 때에 그 정욕으로 무엇을 만들어 내냐. 그 정욕을 가지고 돈을 만들었느냐 권세를 만들었느냐 지위를 만들었느냐. 무슨 명예를 만들었느냐. 아니면 행락을 마련했느냐 쾌락을 마련햇느냐. 가정을 마련 했느냐. 무엇을 만들었든지 그 육체는 다 풀과 같다. 그리 말씀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

육체대로 행한 것은 다 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다만 그 때 세 가지 생명. 진리로 영감으로 주님의 대속으로 만든 것은 썩지 않습니다. 영생합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왜 젖 먹는 이는 여인에게 아이를 낳아서 젖 먹이는 여인에게 화있다 하느냐. 아이를 베고 낳아서 기르는데 하늘 나라에 가는 이 영생하는 기능을 마련하지 못했으면 그것이 다 화가 되지 복이 되지 못합니다 가롯 유다를 두고 말씀하기를 나지 아니했음 차라리 좋을 뻔 했다고. 그것이 다 육체대로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영 구원 얻는 것은 누구든지 똑같습니다. 다만 자기가 일생 동안 영생 하는 것을 만들었으면 금 은 보석으로 짓는 집과 같기 때문에 그 심신의 기능 구원은 불타지 아니하고 풀 나무 짚으로 짓는 것과 같이 육체대로 산 심신의 기능은 다 제하여 져서 불 가운데 던져 지고 맙니다.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포도나무 가지는 둥치에서 잘리고 말라지고 모아다가 불에 사른다고 비유해서 말씀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 살 때 무궁 세계에는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고 벌거 벗은 몸으로 가는 것을 생각하고 오늘 어려워도 현실에서 타지 아니할 것을 마련하고 애를 써야 할 것입니다. 불타지 아니하는 것은 진리만 타지 않습니다. 영감과 진리로 된 것만 불타지 않습니다. 깨끗합니다. 예수님 사죄와 칭의와 화친과 영생의 공로로 만든 것은 다 깨끗하고 의롭기 때문에 불타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것을 마련 하도록 한 시간 한 시간 우리 현실 생활을 해 나갈 때 불탈 것을 마련 할 수 없고 영원히 타지 아니할 것을 마련 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 42절로 44절에는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말씀하면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앟을 것으로 다시 살며 욕 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한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우리가 이렇게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면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받은 것은 둘째 아담의 것으로 변화가 됩니다.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것으로 성화되고 성장하고 온전하게 되어서 영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어떻게 되느냐. 죽어야 살아난다. 죽어야 살아난다.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의 현실 현실도 나는 죽고 주님이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를 범하는 내 옛 사람은 죽고 의를 행하는 새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옛 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을 따라 사는 사람이죠. 또 새 사람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내가 육체대로 옛 사람으로 사는 내가 죽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새 사람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사활로 대속 하신 주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려고 할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나는 죽고 주님이 사는 삶을 살 수 있느냐. 어떻게 해야 이것이 가능합니까? 믿는 우리는 주님 부활에 연합하여 우리 소망과 믿음이 주께 있도록 살려 주셨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라도 우리의 소망과 믿음은 주님에게 있어야 합니다. 악령은 기회 있는 대로 주님 바라보지 말고 세상 피조물 바라보라고 장사하면 돈을 어떻게 하면 잘 벌까 그것만 생각하고 장사하는 사람은 벌써 자기로 살지 주님으로 살지 않습니다. 가게 문을 열고 가서 기도하고 오늘도 주님 시키는 대로 장사하게 해 주시옵소서. 마음에 복을 품고 주님 바라보고 주님 의지하고 주님 시키는 대로 장사하겠습니다. 이것이 첫째로 중요하다 이 말이요. 공부를 하는 학생도 책상 앞에 앉으면 공부만 하려고 나서지 말고 주님이 지혜를 주셔야 해요. 주님이 건강도 주셔야 하고 좋은 선생님도 만나게 해야 하고 생각도 판단도 바로 해야 하니 주님이 이것을 도와 주셔야 합니다.

 주님이 지혜 총명 있게 해 주시옵소서. 이것이 첫째입니다. 우리 모든 생활이 그러합니다. 내가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어떤 형편에 처해도 주님 바라보는 이 마음. 주님과 동행하려고. 주님 시키는 대로 하려고. 하는 이 부활 하신 주님을 바라봐야 해요. 왜 . 주님은 아버지 시키는 대로 순종 해서 아버지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홀로 영계와 물질계를 주권 주재 하십니다. 누구 위하여? 우리 위하여. 택한 자들 위하여. 예수님 대속을 받아서 예수 믿는 우리들을 위하여. 주님의 몸 된 하나의 교회로 구원 하려고 역사해 가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위하여 섭리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이 책임져 줍니다.

그렇지 않고 돈 바라보고 사람 바라보고 권세 바라보고 어찌하면 여기서 내가 편하게 일할까. 안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주님과 멀어집니다. 저는 육체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소망과 믿음을 주께 두고 이 소망을 가진 자 마다 자기를 어떻게 한다 했어요? 깨끗하게 한다 했어요. 우리의 소망과 믿음이 주께 있도록 이번 집회도 가면 이 소망 믿음이 주께 있도록 심령을 깨끗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집니다. 이것을 첫째로 가져서 주님외에 없습니다. 굶어도 주님만 보고 따라가겠습니다 힘들어도 환난이 있어도 주님만 바라보고 따라가겠습니다.

살든 죽든 주님 기쁘시게만 하겟습니다 이 사람이 되어야 어려운 형편에서 평안할 수 있고 병든 데서 강건할 수 있고 가난한데서 부유할 수 있고 비천한 데서 존귀 할 수 있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 한 분에게 있지 인생 에게는 없습니다. 주님 한 분 에게만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활 대속 하신 주님만 바라보고. 그러면 우리가 이 분 주님을 어떻게 따라갑니까. 오늘 믿는 우리에게는 우리 육안에 보이면 좋겠는데 육안에 보이지는 아니하고 심령의 눈에라도 보이면 좋겠는데 캄캄합니다. 위로는 하늘이고 아래는 땅이고 보이는건 사람이고 주위 환경만 보이지 주님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주님 따라갈것입니까.

우리 주님은 내가 길이요. 주님 따라가는 이 길은 어떻게 따라가야 주님 따라가죠? 진리로. 내 현실에는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진리가 있습니다. 악령은 많은 역사의 사람들을 통해서 인간 지식. 진리에서 비뚤어지는 법칙. 과학. 문화. 예술. 많이 내어 놓고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행복하게 산다. 자유롭게 산다. 편하게 산다 하는 많은 사람들의 말들이 있지만 사람의 행불행은 주님 한 분에게만 있습니다. 생사가 주님에게 주권되어있습니다. 존귀 비천이 주님에게만 주권 되어 있는데 주님 인도하는 길은 어디로 가야 주님 만나요? 진리로. 내 형편 어디 처해 있을지라도 주님이 신구약 성경을 윌에게 주셨는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복음이요. 이 말씀은 우리에게 길이요.

 이 말씀은 우리에게 등불이요. 이 말씀이 안내하는 진리는 참 되고 거짓이 없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하면서 이 말씀을 따라가면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사죄를 입고 살게 됩니다. 이 말씀을 떠나서 살게 되면 죄를 범해서 주님이 인도하는 길을 가지 못하고 헤매게 됩니다. 그 때 부터는 앞이 캄캄함이 곧 따라옵니다. 그러나 옳은 진리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 그 길은 환 하게 열립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께로 인도함을 받아서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인생이 참 복 되고 존귀하다. 저 분은 예수를 믿어도 참 옳은 데로 살고 거짓말 할 줄 모르고 약속을 꼭 지키고 참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일만 하고 이렇게 산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주님은 역사해 주십니다.

우리 소망과 믿음이 주님에게 있는게 첫재로 중요하고 그래야 옛 사람 벗고 새 사람으로 삽니다. 나는 죽고 주님께로 갈수 있습니다 둘째는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을 주셨으니 이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서 진리로 삽니다. 이 진리대로 사는 옳은 대로 사는데 양심 내어 놓지 말고 꼭 옳은 데로 사는 신앙 양심을 가져서 옳은 대로 살려고. 애를 쓰기를 소유 몸 생명을 다 바쳐 삽니다. 그리하면 누가 도우세요? 주님이 뭐로 도와 주십니가. 성령으로 감동하시고 진리로 가르쳐 주십니다. 이 성령이 감동을 성경에는 샛별이라 합니다.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더듬어 보니까 샛별이 떠오르기까지너희 마음에 샛벼링 떠오르기 까지 주의 하는 것이 가하다. 말씀하지 않습니까.

이러니 무슨 일을 만나면 성경을 가지고 해야 하나 아니 해야 하나. 가야 하나. 아니 가야 하나. 먹어야 하나. 먹지 아니해야 하나. 참아야 하나. 시작 해야 하나. 따져서. 옳은 진리대로 양심을 기울입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이 신앙 양심을 기울이면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 마음에 감동해서 옳은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을 영감된 진리라. 그리 말합니다. 성경 한 번 찾읍시다. 요한 1서 2장 27절.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 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누가 이렇게 가르쳐 줘요? 기름 부음. 성령의 감화 감동을 기름 부음이라 합니다.

이거는 우리 각자 각자에게 주님이 성령으로 감동하시고 가르쳐 주는 진리. 그것은 참 되고 거짓이 없습니다. 이 영감을 만나고 이 진리를 만나서 내가 소유 몸 생명을 다 기울이고 사니까 무엇을 입고 살게 될까요? 주님이 입혀 준 칭의를 벗지 않고 입고 살게 됩니다. 칭의를 벗지 않고 입고 살게 돼요. 이것을 벗어 버리면 성령이 감동 하여 주시고 가르쳐 주는 것을 버리면 누가 따라와요? 악령 마귀에게 미혹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악령에게 미혹 받으면 저는 죄를 범하게 되고 죄를 범하면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죠. 이렇기 때문에 내 현실에는 죄를 범하느냐.

죄를 범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가지고 따져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지 말라고 해서 내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내가 합니다. 이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지 않습니까 이렇게 양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대해서 철저히 알고 믿었지만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 들이 다 성경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알고 철저히 믿었습니까. 이렇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로 주님과 원수로 가는 걸음을 걷게 된 것은 성경 몰라서 그런 것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것은 양심을 쓰지 아니햇습니다. 양심을 기울이지 아니했습니다. 저희들 보다 예수님 가르치는 교훈이 낫게 가르치니까 주님이 가르치는 것 우리한테 배우는 것 보다 저 분에게 가서 배우는게 더 낫습니다.

이게 양심 아니에요? 그런데 시기 질투합니다. 자기를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 따르니 시기 질투합니다. 자기 따르는 사람보다 예수님 따른느 사람이 더 많으니 이제 우리 안따르고 저분 따르겠다. 해서 양심을 쓰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 예수님 죽여야겠다. 성경을 가지고 정죄 해서 잡아야겠다. 양심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기들의 생명까지 문제가 되니까 죽지 않으려고 병정들에게 돈을 주면서 거짓말 하라고 햇습니다. 시체를 제자들이 도적질 했 다고 말해라. 저들이 성경 잘 알고 오래 믿어도 신앙 양심 쓰지 않으면 죄를 범하지 옳은 의로 못 나갑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말씀 듣고 배우면서 아는 대로 양심써서 살아야 합ㄴ다. 양심을 기르고 북돋아야해요.

이래서 어디까지 힘써야 하느냐. 하나님의 성령이 내게 감동해 주시기 까지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게 감동하셔서 진리를 가르쳐 주거든 진리를 가르쳐 주는데 성령의 감동대로 믿고 살기만 하면 주님 입혀준 칭의를 입고 살게 되는데 왜 성령을 따라 살지 못하고 성령 훼방 죄. 알고도 행하지 못하는 고범죄를 범하게 됩니까. 그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죠? 알고도 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딨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오늘 우리를 감동해서 옳은 것을 가르쳐 주는데도 옳은 대로 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딨습니까. 자기가 제물이 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제물. 산 제물. 살든 죽든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하고 자기를 던져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옳은 줄 알고도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는 그것 때문에 안돼요.

왜. 자기 앞에 오는 어려움이 따라오니까. 그래서 옳은 줄 알고도 행하지 않는 고범 죄. 성령 훼방 죄. 사함 받지 못합니다. 그것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리 살지 않았어요. 십자가에 죽어도 아버지 시키는 대로 옳은 대로 사는 일을 바로 하려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가 땀방울 되기 까지 기도했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까지 기도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야 이제는 돘다. 옳은 진리, 영감 따라 살려고 하는데 소유 몸 생명을 아껴서. 직장 떨어지면 어쩌나. 이웃에게 욕먹으면 어쩌나. 집안 사람들이 욕하면 어쩌나. 이래서 옳은 진리를 내놓고 삽니다. 이러니 주님 따라가지 못해요. 우리가 성려이 감동해 주시는 진리대로 믿고 살면 칭의 입고 살게 되고 성령 진리의 인도를 받고 나면 그 다음에는 누가 책임져 줘요? 주님이 책임져 줍니다. 이제부터 그 때 부터는 내가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이 사시는 삶을 삽니다.

 옛 사람이 다 바쳐져 제물이 되고 나는 이제 새 사람이 되어서 주님이 머리 되고 나는 주님의 몸과 같이. 이렇게 주님은 내 앞에서 인도하고 나는 주님 따라가는 양이 돼서 주님과 동거 동행이 됩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나 위해 살지 않고 주 위하여 사니까 나는 어쩌고. 주님이 나 위해 주는데 뭐가 부족해요. 주님 지혜 내지혜. 주님의 능력, 소유, 영광, 존귀가 내 조존귀가 되어 사는 삶이 새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 심신의 기능은 주님과 함께 영생하는 기능이 되는겁니다. 이것이 부활의 권능이요. 이것이 부활의 영광입니다. 오늘 내 현실을 믿는 우리들이 사는이 삶은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살아 주시지 내가 죽지 않으면 내가 산 제물이 되어 주님 앞에 바쳐지지 않으면 주님이 어떻게 해 줄수 있습니까.

한 주 동안 주일 지키는 것이 한 주 동안 주님 앞에 바쳐져 제물 되어 살겠습니다 하고 주일 지켜야 합니다. 예배 드려야 합니다. 이래서 주님이 사시는 삶을 살면서 주님 하지 말라 하니 내가 안합니다 .하라고 하니 내가 합니다. 순종하는 걸음 걸을 때는 주님과 동거 동행의 걸음이 됩니다. 그 심신의 기능은 다 영생입니다. 이것이 장차 부활의 영광. 부활의 권능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 내 현실 현실을 살 때에 첫째 뭐가 중요해요? 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소망과 믿음이 주님에게 있는지. 아니면 나에게 있는지. 어떤 사람에게 있는지. 돈에 있는지.

직장에 있는지 그것부터 먼저 살펴야 합니다. 소망과 믿음이 어딨는지 살피고 주님에게 소망과 믿음을 두었으면 주님 따라가는 믿음의 걸음은 신구약 성경 말씀 진리를 가지고 하나님이 이거 하지 말라 했다 하나님이 이거 하라 했다. 성경 잘 모르면 십계명으로라도 따져봐여. 말씀으로 양심 기울여야 합니다 진리로 사는데 양심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에 와서 감동해 주시는 진리. 영감진리. 이것이 오거든 이것이 금방 계속 오는게 아니라 번개 같이 스쳐 지나갈 때 잡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걸 잡고는 보배를 찾았다고 진주를 찾았다고 내게 있는 것 다 팔아서 밭을 사야 밭 속에 있는 보배를 내 보배로 삼지.

현실의 보배를 내 보배로 만들 수 있지 않아요 거기 다 기울여요 그리하면 주님이 내가 너를 책임져 주마 하시고 이제는 주님이 입혀 준 화친을 입고 주님 하고 둘이 하나가 되어서 동거 동행하는 것이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 아버지는 주님 안에. 이렇게 역사가 되어서 주님과 동행하는 걸음은 하루 하루 일백 이십년을 노아는 그리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33년 4개월을 세상에 오셔서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걸음만 걸어가면 얼마든지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